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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 로마노프왕조의 몰락(러시아 로마노프 왕조)

by mwollossna 2025. 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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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제국의 왕조인 로마노프 왕조의 몰락에 대해 알아봅니다. 로마노프 왕조는 1613년부터 1917년까지 러시아를 지배한 왕조로 러시아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 동안 존속한 왕조 중 하나였습니다. 19세기말부터 러시아는 국내외적으로 많은 문제에 직면하게 되어 로마노프 왕조는 몰락하게 되었습니다. 지금부터 그 과정을 살펴봅니다.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러시아 2월 혁명

로마노프 왕조는 1613년부터 1917년까지 러시아 제국을 지배한 왕조이다. 이 왕조의 기원은 류리크 왕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류리크 왕조의 마지막 왕인 바실리 3세가 죽은 후 그의 아들인 드미트리가 왕위를 계승하였으나 귀족들의 반발로 인해 퇴위하였다. 이후 귀족들은 회의를 열어 새로운 왕을 선출하기로 결정하였고 이때 선출된 인물이 모스크바 대공국의 미카엘 로마노프였다.
로마노프 왕조의 전성기는 18세기 초 표트르 대제 때였다. 그는 서구와의 교류를 적극적으로 추진하며 러시아의 근대화를 이끌었다. 또 스웨덴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여 발트해 연안을 차지하였으며 오스만 제국과의 전쟁에서도 승리하여 흑해 연안을 확보하였다. 이러한 영토 확장과 함께 상공업 발전 및 군사력 강화 등을 이루어 내며 러시아 제국의 국력을 크게 신장시켰다.
하지만 19세기말부터는 점차 쇠퇴하기 시작했다. 알렉산드르 2세 시기에는 농노 해방 등의 개혁 정책을 추진하여 급격한 산업화로 인해 노동자들의 인권 문제가 대두되었고 정치적 혼란과 사회적 불평등이 심화되었다.
결국 1917년 2월 혁명이 일어나면서 로마노프 왕조는 몰락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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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노프왕조의 몰락-피의 일요일 사건

19세기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러시아 제국은 경제적 불균형과 사회적 불만이 점점 상승하면서 어려움을 겪었다. 주요 원인으로는 산업화의 급속한 진행이었다. 이로 인해 도시와 농촌 지역 간의 격차가 확대되고 노동자 계급의 생활 조건이 악화되었다.
농민들의 상황도 어려웠다. 1861년에 이루어진 농노 해방으로 인해 농민들은 자유를 얻었지만 토지 소유권을 갖지 못해 여전히 가난과 억압에 시달렸다. 게다가 농산물 가격 하락과 세금 부담 증가로 인해 고통받았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적 리더십도 불안정했다. 알렉산드르 3세의 통치 기간 동안 전제 정치가 강화되었지만 동시에 개혁에 대한 요구도 높아졌다.
1905년에는 '피의 일요일' 사건으로 알려진 대규모 시위와 파업이 발생하여 수백 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인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고 불만과 분노는 계속해서 쌓여 갔다.
결국 제1차 세계 대전 참전은 국가의 재정적 위기를 더욱 심화시켰다. 식량 부족, 높은 인플레이션, 실업률 증가 등으로 인해 국민들의 고통은 더욱 심해졌고 왕조에 대한 신뢰는 완전히 무너졌다.
1917년 2월 혁명이 발발했고 300여 년 동안 이어졌던 로마노프 왕조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1905년 러시아 혁명

20세기 초 러시아 제국은 내부적으로 심각한 문제에 직면해 있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1905년 혁명이었는데 이는 광범위한 대중적 항의와 파업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주로 차르 니콜라이 2세의 전제 정치와 경제적 어려움에 대한 반발로 일어났다.
혁명의 직접적인 원인은 1904년~1905년 러일전쟁에서의 패배였다. 이 패배로 인해 러시아 군대의 무능과 정부의 부패가 드러났고 국민들 사이에서 깊은 환멸과 불만이 생겨났다. 전쟁으로 인한 경제적 압박도 심해져 식량 부족, 물가 상승, 실업 등의 문제가 발생했다(농민과 노동자들의 불만, 자유주의자들의 정치 개혁 요구 등 원인)
이러한 배경에서 1905년 1월 22일(율리우스력), '피의 일요일' 사건이 발생했는데 이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평화로운 시위를 하던 노동자들에게 군경이 발포하여 수백 명이 사망한 사건이다. 이 사건은 전국적인 분노를 불러일으켰고 혁명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다.
이후 몇 달 동안 파업과 시위가 러시아 전역으로 확산되었고 일부 지역에서는 일시적으로 자치 정부가 수립되기도 했다. 그러나 니콜라이 2세는 양보하기를 거부했고 10월에는 무력으로 반란을 진압했다. 혁명은 결국 실패로 돌아가고 그 여파는 지속되었고 로마노프 왕조의 몰락을 예고하는 초기 경고 신호 중 하나였다.

 

 

로마노프 왕조의 최후-로마노프의 왕조 몰락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러시아 제국은 또 다른 위기에 직면했다. 전쟁 초반에는 독일군에게 큰 승리를 거두었지만 1915년 이후로는 전황이 악화되기 시작했다. 막대한 군사적, 경제적 지출로 인해 국가 재정이 고갈되었고 물자와 인력 부족으로 인해 국내 상황도 악화되었다.
전쟁이 계속되면서 국민들의 불만과 분노도 커져갔다. 식량 부족, 물가 상승, 징병 등으로 인해 생활고가 심화되었고 1917년 초에는 대규모 파업과 시위가 발생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2월 혁명이 일어나 차르 니콜라이 2세가 퇴위하고 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
그러나 임시정부는 안정적인 통치를 하지 못했고 11월에는 볼셰비키가 이끄는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 임시정부를 전복시키고 소비에트 정권을 수립했다. 이로써 로마노프 왕조는 완전히 몰락하게 되었고 러시아 제국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볼셰비키 등장: 로마노프 왕조의 몰락

로마노프 왕조의 몰락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볼셰비키였다. 볼셰비키는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의 좌파 분파로, 레닌이 이끄는 단체였다.
그들은 임시 정부가 전쟁을 계속하고 개혁을 제대로 추진하지 못하는 것에 실망하여 1917년 10월 25일(율리우스력)에 무장봉기를 일으켰다. 그 결과 임시 정부는 무너졌고 볼셰비키는 권력을 장악했다.

 

 

러시아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로마노프 가문의 최후)

니콜라이-2세-가족
니콜라이 2세 가족, 출처: 나무위키

로마노프 왕조의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와 그의 가족은 볼셰비키 혁명 이후 1918년 7월 17일에 예카테린부르크에서 총살되었다. 이것으로 로마노프 왕조는 완전히 막을 내리게 되었다.
하지만 로마노프 왕조는 러시아 역사상 가장 오래 지속된 왕조 중 하나로 러시아 제국의 황금기를 이끌었으며 오늘날에도 러시아인들의 마음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다.

 

300여 년 가까이 러시아를 통치하며 유럽 열강과의 전쟁에서도 승리하며 러시아의 위상을 높였지만 내부 정치의 혼란으로 인해 결국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 '로마노프 왕조' 우리나라 조선시대와도 비슷한 부분이 조금은 있어 더욱 흥미롭게 느껴지는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의 이야기였습니다.


니콜라이 2세 자녀

 

🔎 니콜라이 2세 자녀: Google 검색

 

www.googl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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